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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하에서 영감을 받아 쓰는 허구의 이야기

회피형남자D 5편: 질투

D와 i가 처음 둘이서만 방을 파게 된 계기는 아무래도 “Q”때문이었다. 그녀는 D의 팔로워로서 갑자기 툭 튀어나와 i의 존재는 까맣게 무시하고 D하고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대화를 방해받고 싶지 않았던 D는 방을 잠그게 되었다.

Q는 갑자기 들어와서 콧소리를 있는대로 내어가며 일부러 낸듯한 혀짧은 목소리로, 요리를 잘하는 여자가 좋다고 이야기하고 있던 중이었던 D에게 자신의 베이킹 실력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나 잘 만들징~?! 맛있겠징~?! 나한테 투자해~ 나한테 가게 내줘~?!” 같은 방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보였다.

D를 잘 몰랐던 시절 i는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D의 여자친구라고 오해했다.

그러자 D는 화들짝 놀라며,
“미쳤어요?! 그 사람 애도 있는 유부녀라고요!!”라고 말했다.

i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학창시절 “마당발”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던 i에게는 많은 남사친들이 있었지만 남사친에게 말할 때 애교와 콧소리를 내어가며 혀짧은 소리로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D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i에게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우리 사이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거야? Q에게 밤마다 너랑 이야기하냐고 다 안다고 묻는 카톡이 왔어.”

i는 Q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물론 Q가 지난 번에 들어와 D에게 가게를 내달라는 소리를 했을 때 i도 있었으나 Q는 D이외의 사람들은 깡그리 무시하고 그에게만 이야기했기 때문에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당연히 Q에게 이야기했을 리 없다.

D와 이야기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녀의 지인들 뿐이었다. 이 방 저 방에서 초대를 받고 웨이브를 받아도 응답하지 않아서 그 친구들에게 접속중으로 뜨긴 하겠지만 프라이빗으로 D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도중이라 참여하지 못했다고 말한 적은 있었다.

i는 졸지에 D의 화받이가 되어 어처구니가 없었다. 뭐지? 둘이 사귀나? 이야기하는 걸 아는 게 뭔 대수지?

i는 또 한 가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었다.

결혼하고 애까지 낳았다는 유부녀가 애는 안 보고 왜 하루종일 클럽하우스만 하지? 주말에도 하루종일 클럽하우스를? 애는 남편 혼자 보나? 그리고 원래 알던 사이에도 저렇게 사생활에 간섭하는 카톡을 주고 받는 것도 이상한데 어플로 알게 된 사이인데 왜 밤늦게 사생활을 공유하는 카톡을 주고 받지? 남편이 뭐라고 안 하나? 그리고 왜 그녀가 아는 것에 D는 신경질이지?

학창시절 그 아무리 그 긴 세월 친하게 지냈고 매일같이 만나던 사이였다 하더라도 남사친이 결혼하면 거의 연락하지 않는 i에게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i에게는 가정의 평화와 가정을 지키려는 책임감이 매우 중요한 가치였다. 회사를 다니면서 결식하는 한부모가정의 자녀들에게 도시락을 제조해서 배달하는 사회환원활동에 참여했던 i는 결식아동들이 사랑을 찾아 떠나버린 한쪽 부모로 인해 가정이 붕괴되어 본인 잘못 없이 피해자가 된 사례들을 많이 봐왔다. 또한 우울감이 높아 자살 사고를 많이 하는 학령기학생들의 배경에는 왕따스트레스보다도 부모로 인한 불행한 가정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모와 명성과 재력을 모두 가진 화려한 스타들이 자살로 삶을 마무리하는 기저에는 파탄가정에서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래서 미혼시절 매일같이 수다 떨던 매우 친한 이성친구였다 하더라도 그에게 가정이 생기면 연락을 끊고 단독으로 하는 연락은 무조건적으로 자제하는 i에게 더더욱 Q의 행동은 그녀의 윤리관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또 i는 Q가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잘못을 했다고 호소하며 그 사람에게 사과를 받고 싶다며 그들의 일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을 모조리 불러다가 조리돌림을 하려는 시도를 각각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두 번이나 하는 것을 보았기에 그녀를 알기도 전에 알고 싶지 않았다. 요즘엔 초등학생도 폭력예방교육을 받아서 안 할 법한 “꼽주다”는 행동을 불혹이 다 되어가는 다 큰 성인이 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일에 직접적인 연관도 없는 Q의 지인들도 다 발 벗고 집단으로 나서서 사과하라는 둥 하는 것을 보면 어릴 때나 있었을 법한 일진놀이를 보는 것 같았다. 진정 사과를 받고 싶다면 상대방의 잘못을 납득할 수 있도록 이해시켜야 하는 게 아닐까? 단체를 동원하여 윽박질러서까지 사과를 받는다는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사과가 아니고 그저 상황을 모면하려는 사과를 받을 뿐이다. 결국 그녀는 상대를 굴복시키고 세를 과시하겠다는 것으로 보여서 비호감이었다. 과연 상대는 그렇게 다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지탄을 받아야 하는 어마무시한 잘못을 저질렀을까? 얼마나 극악무도한 대죄를 저질러서 “여왕”의 심기를 거슬렀기에 그 사람은 만인이 보는 앞에 창피를 당해야 하는 걸까? 이렇게 함무라비 법전이 있던 시절의 방식으로 인민재판이 거행된다면 대한민국의 사법시스템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걸까?

i는 그런 사람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다. ‘만약 가까워져서 잘 지내다가도 Q의 심기를 조금 거스를만한 일 하나 저지르면 나도 저 돌팔매광장에 질질 끌려나가지 않을까?’하고 i는 상상해보았다.

그러나 이런 자세한 이야기는 D에게 하지 않았다. 유부녀이든 아니든 둘이 비밀리에 사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i는 D가 Q의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예민한 반응을 보였고 D는 그것을 i가 “질투한다”라고 받아들였다. 그래서 주말약속이 있다고 i에게 말할 때면 남자라는 설명을 친절하게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사실 i는 질투라는 감정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전남친이 여사친을 만나든 말든 별로 간섭하지 않았다. 폰검사(?)라는 말도 그녀에겐 생소한 말이었다. 바람 필 놈은 몰래 애인 모르는 세컨폰이라도 마련해서 핀다고 생각했기에 서로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보다도 신뢰와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다. 여사친과 만나서 둘이 술을 마신다고 해도 무조건적으로 바람을 피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뢰가 있는 사람이라면 속상해할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해서 애초에 의심 받을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듯 신뢰는 그녀에게 중요한 가치였다.